카미노 데 산티아고 (Camino de Santiago), 순례자의 길


2010년 3월 9일 화요일

Carrion de Los Condes ~ Ledigos (23.1 km│4시간 50분)



코골이 아저씨들 덕분에 밤새 한 숨도 못잤다. 귀에 이어폰을 착용하고 노래를 듣는데도 계속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새벽 3시에 짐을 챙겨 나왔다. 하루 종일 걷고 낮에 시에스타를 조금 한 게 전부였다.


다른 사람들이 깨지 않게 조심히 가방을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처음에는 방향을 못잡고 헤매다가 겨우 카미노 표시를 발견하고 걷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없이 어둠 속을 걷기 시작했는데 점점 무서워졌다. 귀신이라거나 이런건 무섭지 않았는데, 야생동물의 습격이 겁났다.




손전등하고 스틱을 손에 쥐고 계속 걸었다. 남들보다 먼저 다음 마을에 도착하여 먼저 쉬고 있을 생각만 했다. 이 시간에 한 번쯤은 걸을 만 하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폐를 감쌌다. 달빛에 의지해 걷는 기분, 참 묘하다. 주위가 어두워지니 하늘의 별들이 더욱 더 빛나 보였다. 



자 여기부터는 가로등이 없다...이제 부터는 정말 어둠 속을 걷는 것이다.

암순응 점점 하며 방향을 가르키는 화살표가 없나 찾았다. 환한 공간에서 갑자기 어두운 공간으로 갔을 때,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시간 경과에 따라 어둠이 눈에 익어 주위의 사물이 보이는 현상. 빛을 느끼는 시세포의 역치는 밝은 곳과 어두운 곳에서 달라지는데, 그 차이는 약 1만 배라고 한다. 밝은 곳에서 갑자기 어두운 곳으로 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차츰 보이게 된다. 이것이 암순응인데, 시세포의 역치가 내려가서 감도가 좋아지는 것이다.



다행히 여러 갈래 길 없이, 한 길로 쭉 연결되는 길이었다. 한 시간 남짓 걸었을까, 해가 조금씩 떠오르고 주변위 환해지기 시작했다. 주변을 살피니 넓은 평원 뿐이다. 



계속 걸으면 도로 옆을 걸게 된다. 흙 길을 밟는 것이 아스팔트보다 좋았다. 물론 다리가 아파 다리를 끌고 다니는 기분이었지만 말이다. 비수기라 그런지 황량하기도 하였지만 나름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을 즐겼다.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카미노 데 산티아고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고 들었다. 걷다보면 여러 유럽인들을 만날 수 있었고 모두 각양각색이다. 준비물로 선글라스를 챙겼더라면 더 좋았을텐데ㅎㅎ 



아직 전 루트를 걷는 동양인, 한국인은 길 위에서 만나본 적이 없으며 자부심을 갖고 걸었다. 늘 나와 함께 걷는 건 나의 그림자 뿐. 다행히 길을 잃지 않고 잘 걷고 있다는 표시.



새싹이 나고 푸른 봄, 여름에는 훨씬 더 예쁠 것이다. 하지만 이 계절의 카미노도 매력이 있다. 그리고 걸으면서 점점 계절이 바뀌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곤 했다.



길에 차도 한 대 없다. 만약에 택시나 버스가 있었더라면 마음이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길 위에 돌맹이로 만들어 놓은 도마뱀..? 나도 주변에 있던 돌 하나를 던져 놓았다.



사실 El Burgo Ranero를 목표로 걸었지만, 잠도 못잤고 배도 고프고 피곤해서 Ledigos에 머무르기로 했다. 정말 작은 한적한 마을이었고, 사람도 잘 안보였다. 알베르게는 Ledigos의 한 레스토랑과 함께 붙어있다. 손님은 나 혼자 뿐이었고, 휴식을 취하기에 적절했다. 오늘 해가 너무 뜨거웠고 쉴 만한 그림자도 없어 쉬지 못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같이 걷던 다른 동료들은 내가 멈춘 이 곳을 지나갔다. 물론 함께 하고 싶었지만, 한 번쯤 혼자 떨어져보고 싶었다. 내 여행, 나만이 시간을 탐닉하자.

레디고스(Ledigos)의 도장은 알베르게 체크인 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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